지하철 좀비

분류없음 | 2008/07/17 14:09 | 페리레이지
지하철이 제일 붐비는 시간은 아침.  직장인, 학생들이 출근, 등교하는 시간이다. 
물론 이 사람들이 저녁때 다시 돌아가면서 저녁때도 붐비기는 하지만, 지하철 분위기가 유쾌한 편이다. 
일단 뭔가 끝내고 돌아가고 있으니까. 

반대로 아침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아 젠장"이라는 말풍선을 달고 있어보인다. 
사람들이 말도 없고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저녁때라면 동행이랑 이야기도 하고 친구에게 문자도 보내면서 지루하지 않게 돌아올 수 있는데, 아침에는 그게 안된다.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출근을 같이 하고 있는 처녀총각들이 있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그 친구 역시 그런 커플을 보면 므흣한 상상밖에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튼 이들은 아침부터 무슨 할 이야가가 그리 많은지 계속 중앙방송을 쏴댄다. 
저녁때라면 수많은 지방방송이 있어서 그들의 목소리가 묻히겠지만, 아침에는 그렇지 못하다. 
그들이 유일한 소스다. 

이렇게 쓰고나니까 꼭 내가 그런 커플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듯 하지만, 그건 아니다. 
너희들의 기분은 나도 충분히 이해해.  그리고 사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는 그냥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 인지할 뿐, 내용은 전혀 듣고 있지 않으니까 상관없어. 
단지, 침묵의 지하철에서 특이사항이 될 만한 것이니까 언급했을 뿐이다.

내가 아침에 짜증을 느끼는 건 신종 몬스터들 때문이다.
바로 신문을 모으는 노인네들. 
아니, 어른을 공경하는 동방예의지국에서 하늘같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몬스터로 비유하다니 너 제정신이냐?
그럼, 제정신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아침마다 불쾌한 경우를 겪으면서도 참고 있다.

내가 겪은 불쾌한 경우
1. 내 옆으로 지나가는데 이어폰이 같이 딸려갔다.  덕분에 한쪽이 들리지 않아서 집에 모셔둠.
2. 잠깐 눈을 붙이려고 다리위에 올려둔 가방에 몸을 기댔는데, 갑자기 머리에 충격.  내 자리 위에 있는 선반으로 돌격한 몬스터가 머리를 깔아뭉게다 싶이 것.
3. 거대한 수확물 자루를 끌고 내리다가 자루가 틈에 꼈음.  지연 출발 + 차장은 계속 시끄럽게 방송.

아마 최근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본 사람이라면 다들 경험해봤을 것이다.  내가 당했던 것을 내 앞이나 옆에 있는 사람이 당하고 짓는 표정만 봐도 내가 경험한 것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이 몬스터들을 좀비라고 부르련다.
살아 있는 인간을 보면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는 좀비처럼,
수도권 지하철 좀비들은 신문을 발견하면
남의 몸으로 밀치고 발을 밟고 옷이나 물건에 흠집을 내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냥 달려드는 거다.


덧.  좀비 소탕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봤는데.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힘들다.
우리네 정서에  힘들게 사는 노인에 대한 동정심이 깔려 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짜증을 낼때 조차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 공사에서 처리해주는 것이 최선인 듯 하다.